손바느질한 실크 조각을 정교하게 콜라주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기반의 흑인 여성 작가 빌리 장게와 (Billie Zangewa). 그의 개인전 ‘혈육(Flesh and Blood)’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11월 18일부터 2022년 1월 15일까지 개최된다. 2020년 10 월 리만머핀과의 첫 전시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흐르 는 물(Running Water)’과 ‘혈육’이라는 전시명으로 리만머핀 런던과 서울에서 순차적으로 열린다. 두 전시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으로 고립되어 작업하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가족, 노동, 일상에 감 사함을 느끼고 그러한 감사에서 비롯된 두 개의 작업군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했다. 리만머핀 서울의 전시 ‘혈육’이 가족이나 친구라는 가 까운 공동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리만머핀 런던의 전시 ‘흐르는 물’은 작업을 하고 아이와 자신을 돌보는 일상의 행위를 살핀다. 장게와는 프랑스 파리 지역의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노바(Radio Nova)에서 네빌 브라더스(Neville Brothers)의 ‘Sons and Daughters’(1990)라 는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두 개의 전시명을 생각해냈다.
패션과 광고업계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빌리 장게와는 직물 콜 라주 작업을 바탕으로 집 안 내부와 도시 경관, 인물화를 통해 개인적 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경험을 담아낸다. 그는 초기 작업에서 보츠 나와 지역의 야생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기억을 직물에 수놓았으나 이내 요하네스버그에 거주하는 한 여성으로서 개인적인 인간 관계와 경험에 주목하는 도시 풍경을 창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아 들의 출산 이후에는 자아 성찰과 여성성에서 모성과 가정으로 전이 된 관심에 천착하여 집의 내부 경관을 작업화하기 시작한다. 종종 일 상에 기인한 장면이나 경험을 언급하면서 사회를 원활히 지속시키는 데 일조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자주 간과되고 경 시되는 혹은 무시되는 여성에 의해 수행되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가족, 친구, 인류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내포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는 장게와의 작업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 다. 코로나19의 확산과 뒤이은 사회적 제약에 따라 많은 이들이 안전 과 각종 규제상의 이유로 익숙한 관계를 가까이하면서 가족의 중요
성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게와의 아들은 그의 작품에 반복 적으로 등장하는 대상이자 이번 전시 ‘혈육’에 소개되는 콜라주 작업 의 중심 주제다. 그는 일련의 초상 작업에 직계가족으로 이루어진 파 편화된 가계도부터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 까운 친족과 친구들에 이르는 다양한 장면을 담아 유전적인 그리고 선택적인 가족 구성원을 그려낸다. 나아가 리만머핀 런던에서 열리 는‘흐르는물’전시는팬데믹으로인해양육과일,일상의반복적행 위에 일어난 변화를 시각화해 작업한 다수의 콜라주 작업을 소개한 다. 런던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서울 전시의 주제에 근간을 둔 것이다. 정원에서 명상하고 테라스에서 작업하며 아들을 다독이기 위해침대에앉고매일신발을신고벗는아주단순한행위등자칫 단조로워보일수있는작가의일상속장면을묘사한다.전시작품 <Whatever It Takes>(2021)에서 그는 작품의 다듬어지지 않은 가장 자리 쪽 부엌 찬장에 앞코가 가려진 운동화를 정물로 담아냈다. 장게 와는“10여 년 전 런던에 살 때 피카딜리 서커스에 있는 릴리화이트 매장에서 아디다스 운동화를 구입한 후 줄곧 신었다. 일하는 날에는 항상이운동화를신으며하루를시작한다.서있는시간이꽤되다 보니발을잘받쳐주는이운동화를신게된다.예전만큼발을잘지 탱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신발을 사야 할 때가 빨리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화와 함께한 세월이 길고 애착이 생겨 쉽게 떠나 보내기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업용 운동화에 상징적 으로 깃든 노동과 지지, 일상과 편안함을 표현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 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작업을 지속하고자 하는 작 가의 엄중한 헌신을 암시한다.
이번 리만머핀 서울과 런던 전시와 비슷한 시기인 10월 20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미국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박물관(Museum of the African Diaspora: MoAD)에서 빌리 장게와의 미국 내 첫 개 인전인 ‘Billie Zangewa: Thread for a Web Begun’도 개최된다. 아 프리카 디아스포라 박물관 전시는 지난 15 년간 이루어진 그의 작업 을 비롯해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신작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겹겹이 쌓아 올린 실크 콜라주 작업에 묘사된 대부분의 장 면은 그의 삶을 반영하며 자전적인 성격을 띠지만 장게와라는 작가 의 개인적인 여정 그 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의 노동집 약적 작업 과정은 ‘여성의 일’이 내포한 역사적 함의를 환기시키는 동 시에 현대적인 재해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 초래한 특수한 시간과 급격한 변화를 이 중으로 드러낸 장게와의 두 전시 ‘혈육’과 ‘흐르는 물’은 집단적이면 서도 사적인 가정 생활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며 특히 힘들고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운 시기에 드러나는 가족, 친구, 일상의 중요성 을 보여준다. 그는 런던과 서울 전시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을 통 해 더욱 공고해진 관계와 달라진 상태에서 영위하는 가정 생활에 대 한 솔직한 시선을 특별히 강조하며 지난 2년을 되돌아본다. 보는 이 에게각자의삶,특히습관,관계그리고일상생활의변화를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련의 작품들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희 망의 메시지이자 자신은 물론 가족, 친구, 나아가 인류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Let’s create something valuabl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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